나이 오십, 이제는 ‘관계의 집세’도 내지 않기로 했다 (50대 관계 미니멀리즘)

어제 글에서 우리 집 공간을 차지하는 물건들에게 무심코 ‘집세’를 내어주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나눴지요. 대전 서구 도서관의 희망도서 대출서비스 덕분에 물건이 차지하는 집세는 줄이고 지식은 채우는 저만의 미니멀 독서법을 소개해 드렸는데요. 글을 발행하고 나서 밤에 가만히 누워있는데, 문득 한 걸음 더 나아간 생각이 스쳤습니다.

‘내가 물건에게만 집세를 내주고 있었던 게 아니구나. 내 마음속 가장 넓고 귀한 평수를, 정작 나를 지치게만 하는 인간관계에게 월세 한 푼 안 받고 내어주고 있었구나.’

나이 오십이 넘어가니 스마트폰 연락처에 이름은 수백 명인데, 정작 마음이 헛헛하고 피로할 때 편하게 전화 한 통 걸 곳이 없다는 서글픈 모순을 마주하게 됩니다. 오늘은 물건 정리만큼이나 시급한, 오십에 시작하는 영리한 ‘관계 미니멀리즘’과 관계 다이어트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60대와는 다른 50대, 왜 ‘의식적인 관계 미니멀리즘’이 필요할까

삼겹살집에서 소주잔을 부딪치며 즐겁게 대화하고 있는 50대 한국인 남녀 친구들의 모임 모습.

1) 50대에 찾아오는 에이징 번아웃과 마음의 신호

흔히 자녀의 독립이나 갱년기와 맞물려 중년의 만성 무기력증, 이른바 ‘에이징 번아웃’이 찾아오곤 합니다. 몸도 예전 같지 않은데 마음까지 묵직해질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조용한 나만의 시간을 원하게 됩니다. 몸과 마음이 지쳤다는 것은 현재 내 삶에 과부하가 걸렸다는 강력한 신호입니다. 이때 가장 먼저 점검해야 할 것이 바로 ‘내가 어디에 에너지를 쓰고 있는가’입니다.

2) 저절로 줄어들 때까지 기다리면 늦는 이유

많은 사람이 60세가 넘고 은퇴를 하면 자연스럽게 주변 인맥이 정리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번아웃과 우울감이 밀려오는 50대에는 자연스러운 흐름에만 맡겨둘 여유가 없습니다. 지금 당장 내 마음의 평수가 좁아져서 숨이 가쁜데, 원치 않는 모임과 의무적인 관계를 유지하느라 진을 빼고 있을 수 없으니까요. 따라서 50대에는 내 손으로 직접 관계의 밸브를 잠그는 ‘의식적인 미니멀리즘’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람과 책의 결정적 차이, 에너지를 쓰는 관계 vs 채우는 관계

의식적으로 관계의 평수를 줄이고 난 뒤, 저는 그 빈자리를 다른 사람으로 채우는 대신 ‘책’과 단둘이 보내는 시간으로 채우기로 했습니다. 가만히 서재에 앉아 책을 읽다 보니, 사람과 책이 우리에게 주는 에너지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간관계로 에너지가 방전된 모습과 서재에서 독서를 하며 에너지를 지혜와 평온으로 충전하는 모습을 비교한 대조 일러스트 이미지.

1) 사람은 에너지를 소모시키고, 책은 에너지를 충전한다

50대가 되면 수십 년간 쌓여온 초등학교, 대학교, 전 직장, 동호회 등 참여해야 하는 모임만 해도 양손으로 꼽기 힘들 정도입니다. 여기에 매달 청첩장과 부고장 등 챙겨야 할 경조사는 왜 그리도 끊임없이 돌아오는지요. 체면 때문에 억지로 나간 모임에서는 상대방의 험담이나 자식 자랑을 들어주느라 진이 빠지고, 의무감으로 챙기는 경조사는 경제적 부담을 넘어 주말의 소중한 휴식 시간까지 앗아갑니다.

이처럼 사람은 필연적으로 감정 노동과 리액션, 그리고 보이지 않는 사회적 에너지를 요구하기에 집에 돌아올 때쯤엔 배터리가 방전된 스마트폰처럼 녹초가 되기 일쑤입니다. 반면 책은 완벽하게 내 페이스대로 움직입니다. 읽다가 지치면 덮어두고 멈추어도 누구 하나 서운해하지 않고, 경조사비처럼 무거운 의무감을 지우지도 않습니다. 온전한 내 시간과 에너지의 주도권이 나에게 돌아오는 순간입니다.

2) 사람은 나에게 역할을 요구하고, 책은 그저 묵묵히 기다린다

중년의 인간관계란 가끔 서로에게 기대하는 역할과 체면이 있어 무겁습니다. 누군가의 부모로서, 직장의 상사로서, 혹은 오랜 모임의 일원으로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증명하거나 도리를 다해야 하죠. 하지만 책은 나에게 어떠한 자격도 요구하지 않으며, 내 지친 모습을 비난하지도 않습니다. 내가 마음의 문을 열고 책장을 펼칠 때까지 서재 한구석에서 묵묵히, 따뜻하게 기다려 줄 뿐입니다. 사람은 에너지를 ‘쓰게’ 만들지만, 책은 방전된 내 내면을 지혜와 평온으로 ‘채워’ 줍니다.


관계의 빈자리를 ’50의 서재’로 채우는 지혜

관계를 줄인다고 해서 삶이 고독해지거나 외로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수많은 모임의 소음과 의무적인 경조사의 굴레를 조금씩 내려놓고 나니, 비로소 내 내면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진짜 소중한 몇몇 인연들에게 집중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깁니다.

그동안 남들의 비위를 맞추고 도리를 다하느라 내어주었던 마음의 넓은 평수를 이제는 오롯이 나 자신에게 돌려주세요. 시끄러운 세상 밖 모임 대신, 은은한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책 한 권을 들여놓고 보내는 고요한 시간이야말로 무너진 오십의 몸과 마음을 가장 빠르게 회복시키는 최고의 처방전이 될 것입니다.

오늘도 내 마음의 평수를 지켜내느라 애쓰신 여러분, 여러분은 요즘 어떤 모임이나 관계에 귀한 ‘마음의 집세’를 내어주고 계시나요? 댓글로 여러분의 중년 관계학 이야기를 나누어 주세요.

관련글 더보기